기억 - 매니저 되어 보기
벌써 거의 20년 전이 되어 버린 예전 이야기지만, 매니저라는 역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엔지니어링 매니저라는 역할을 미국에서 처음 받게 되었다. 그 전에 없던 경험인데, 조직도라는 트리 그림에서 누군가의 위에 올라가 보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10년간 독고(?)로 지냈었기에 거기서 비교할 만한 경험이 있진 않다. 구글에 가서는 조그만 팀을 맡았는데, 특히 본사에서는 인턴 하나를 호스팅하는 데도 매니저 교육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후 한국 회사들과도 같이 일하며 여러 비교할 이야깃거리가 생겨 남겨 본다. 회사들마다, 팀들마다 사정이 다를 테니 혹시 너무 일반화하지 않으면 좋겠다.
매니저의 권한 - 생사(살)여탈권
미국에서 배운 매니저의 권한은 생살여탈권에 준할 정도로 강력하다 싶다. 이 단어는 대학원 입학 시 지금은 돌아가신 민상렬 교수님께서 첫 면담에서 인용하셨던 말씀인데, 지금 떠올려 보면 당시 느낌은 조금 더 공포스러웠던 거 같고,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해야 한다는 면에서 제일 먼저 떠올랐다. 당시 기대만큼 따르지 못해 부끄러웠던 기억도 있다.
매니저와 짝이 되는 말은 direct report 혹은 reportee인데, 미국에서 배운 것 기준으로, 매니저로서 해야 할 일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자면, 먼저 리포티가 일을 잘 해내고 성공하도록 돕는 데서 시작한다. 그들이 어느 레벨에 얼마를 받는지 알고 필요할 때 조정하는 일, top-down으로 내려오는 전달사항을 정리해 전하는 일도 매니저 몫이다. 평가 시즌마다 리포티를 자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결과를 직접 전달해야 하고, 분기별 계획과 growth plan도 함께 정리한다. 어딘가 구멍이 나면 책임지고 메우고, 퇴사한 리포티가 회사를 sue 할 경우에도 대응한다. 필요하면 채용에도 참여하는데, 다른 팀의 유능한 직원에게 접촉하는 것까지 포함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일들이 동시에 벌어졌기에, ‘팀’이라는 말을 explicit하게 쓰지 않으려 했던 거 같다. 구글에서는 전문 EM은 L6 정도부터 권했고, 그 아래는 TLM이라 하여 7-8명 정도의 인원을 데리고, 절반 정도의 에너지는 팀원 관리, 나머지 절반 정도는 IC 역할을 병행하며 기술적인 리더십을 주게 하는 일들이 꽤 있었다. 아주 드물게 낮은 레벨의 전문 EM이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후 레벨이 올라가면서는 Uber TL 등의 전문 기술 트랙과 senior engineering manager 등의 관리 전문 트랙으로 나뉘게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리포티의 권리
꽤 강력한 매니저의 권한과 역할에 비해, 리포티에게도 나름의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구글에서, 혹은 업계 전체를 훑어보자면, 여러 이동을 통해서 매니저를 바꿀 수 있는 게 가장 큰 권리(?)에 해당한다 싶다. 리포티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아래와 같다.
매니저 서베이 : 주기적으로 내 매니저들이 잘 하고 있는지 설문 참여.
구글가이스트 (Googlegeist) : 전사적으로 시행하는 설문지, 1/3 정도는 매니저들에 대한 피드백 수집
skip manager에게 고자질
매니저 바꾸기 (팀 바꾸기, 전직)
매니저의 시각에서 팀원의 이탈은 요주의 시그널이라, 그래서 데리고 있는 사람의 수가 성과의 개인 지표로 이용되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매니저
미국과 대비해 한국에서는 EM이 꽤 보기 힘들다. 여러 이유가 있겠는데, 먼저 많은 회사에 인사팀이 별도로 존재하는 게 가장 큰 이유일 테고 미국과 다른 고용의 형태도 중요한 부분이겠다. 나이 순으로 매겨지는 유교적 습관도 한몫하고 있을 거고, 당장 앞으로 달려가야 하는 규모 작은 회사에서는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게다.
한편으로는 리포티 입장에서 필요한 도움을 커뮤니티나 멘토링 혹은 바깥에서 접하게 되어 다른 형태의 갈등이 일어나곤 한다. 예를 들면, 유튜브에서 봤다는 구글의 20% 과제를 들어 자기도 일주일에 하루는 일 안 하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넷플릭스의 포스트모템(post-mortem) 문화를 거론하며 전체 메일로 폭탄을 던지고 퇴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가까이에서 챙겨주는 매니저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AI 시대의 매니저
이제 고인물이 되어 버리는 빅테크에서는 중간 매니저들의 수를 줄이며 flattening이라는 노력을 하면서 EM들에게 IC로 전환을 강제하기도 했다. 트리 구조로 나타낼 수 있는 조직도의 높이를 낮추려는 노력일 테다.
많은 일자리가 대체될 거라 예상되는 가까운 미래에 EM들과 IC들 중에서 어느 쪽이 먼저 없어질까 논의도 있고,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 같은 데서는 아예 EM을 나중에 뽑곤 한다. job market에 꽤 늦게 나타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테고, 상대적으로 계륵처럼 애를 많이 먹이는 역할이기도 한 거 같다.